작성일 : 20-06-28 21:25
'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을 하지'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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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글쓴이 : 신제영
조회 : 372  

       많은 사람들이 조금만 여유로운 시간이 더 주어진다면 얼마나 좋을까 상상의 나래를 펼치곤 한다.  나에게도 이런 간단하지만 현실에서는 할 수 없었던 그래서 그 일들만 하면 너무나 행복할 것 같은 소소한 바람들이 몇 가지 있었다.

처음은 새벽 늦잠이었다.  버스 운전이 직업인지라 보통 5시30분에 일어나야 해서 늦어도 밤 11시 이전에는 잠자리에 들려고 했다.  엎치락뒤치락 하다가 겨우 잠들기도 했고, 잠이 들면서도 알람이 울리면 반드시 깨야 한다는 압박감이 늘 가슴 한 켠에 있었다.  

두 번째는 평일 아침식사였다.  따뜻한 커피 한 잔과 베이글이나 토스트 한 쪽을 들고 가족들과 deck에 앉아 새소리와 아침햇살을 즐기며 여유롭게 아침을 즐기는 일이었다.  평소 이 시간에는 늘 운전 중에 있으니 식사를 하더라도 휴식시간에 버스에서 혼자 해결해야 했다.  

세 번째는 석양을 받으며 동네를 산책하거나 조깅하는 일이었다.  봄 가을이라면 더할 나위 없이 좋은 시간일 뿐 더러 한 여름이라도 이 시간 즈음이면 더위가 한 풀 가시는 시간이라 늘 동경해왔었지만 항상 어두워져서야 퇴근하는 탓에 이런 기회가 주어지지 않았고, 쉬는 주말에는 집안일, shopping이다 해서 좀처럼 여유가 생기지 않았다.

네 번째는 자전거 여행이었다.   운전하면서 부러웠던 것 하나는 자전거 손님을 맞을 때다.  힘들게 와서 자전거를 버스에 싣고 편안하게 앉아가는 모습이나 목적지에서 자전거를 내리고 바람을 가르며 페달을 밟는 모습이 그렇게도 아름다울 수 없었다.  당장이라도 오전 일과 마치면 자전거 끌고 어디론가 떠나야겠다 마음 먹었다가도 식사하고 또 일하러 갈 생각하면 망설이다가 포기하기를 몇 번이었는지… 오후에 일만 없었더라면 하고 바랐던 적도 수 없이 많았다.

마지막은 글쓰기였다.

운전을 오래 하다 보니 자연스럽게 이런저런 생각에 잠길 때가 많다.  때론 내 자신을 되돌아보며 반성할 때도, 새로운 다짐을 할 때도, 깨달음을 얻을 때도 있었다.  그냥 잡념으로 날려보내기는 아까와 글로 차분하게 정리해 놓고 싶은 마음이 늘 간절했다.  그러나 집에 돌아올 때 즈음이면 이미 떠올랐던 글감은 사라졌거나 기억이 잘 나지 않았다.  다시 생각을 차분하게 정리하기에는 시간이 부족했다.  그렇게 며칠 지내다 보면 언제 그런 생각을 했는가 싶고 흐지부지 일상을 지나게 된다.

나는 늘 이 다섯 가지 일들을 못했던 이유는 오전과 오후 일해야 하는 버스 운전 때문 이라고만 늘 생각했었다.  그래서 운전하면서도 내일 하루 쉬면 참 좋겠다… 운전만 안 하면 내가 하고 싶은 일을 마음껏 할 수 있었을 텐데…하고 바랐었다.  그렇게 또 하루 일과가 지나고, 한 달, 두 달, 일 년, 이 년… 시간이 흘러갈수록 내 바람은 단순한 바람을 넘어 소원이 되고, 소원을 넘어 어느덧 꿈이 되어가고 있었다.  

그러던 2020년 3월16일

연초에 중국에서 발생한 코로나 바이러스 때문에 미국 내 확산 방지를 위해 버스 운행이 단축됐다.  A,B 조로 나뉘어 격일로 운전하기로 결정된  40년 Washington Metro 역사상 한 번도 시행되지 않았던 일이었다.  주중 매일 9시간30분씩 일했던 그 덕에 나는 격일로 4,5시간 정도씩만 일하게 되었다.  나는 이제까지 평소 그렇게도 하고 싶었던 바람이자, 소원이자, 꿈을 원 없이 했다.  새벽에 시간 맞추고 일어난 적 없었고, 매일 deck에 나가 아침 먹고 석양을 받으며 산책했고, 자전거로 온 동네를 누비고, 돌아와서 책상에 앉아 글을 썼다.  그토록 바라왔던 이 모든 것들을 세 달 동안에 다 이루었다.  그 기쁨이 계속될 줄 알았다.  날마다 새로운 기쁨이 생겨날 줄 알았다. 

하지만 한 달쯤 지나니 모든 것이 시들해지기 시작했다.

늦잠 자는 것은 생각처럼 유쾌한 일이 아니었다.  오히려 몸이 찌뿌듯해서 하루의 시작을 무겁게 만드는 날이 많았다.  아침은 매일 메뉴를 바꿨지만 한 달쯤 되니 더 이상 먹고 싶은 게 없어질 정도로 물렸다.  매일 똑 같은 길을 산책하는 일은 얼마나 지겨운 일인가를 이번에 깨달았다.  자전거 여행은 허리 통증을 유발했고,  글은 두 편 쓰니 더 이상 글감이 떠오르지 않았다.   나는 당황했다.  몇 년 동안 내가 바라왔고 꿈꾸어왔던, 그래서 그것을 원 없이 하면 얼마나 행복할까 했던 일들이 한 달 만에 시들해지다니…

눈을 들어 내 주변을 바라봤다.  나만 이런가… 다른 사람들은 어떨까 하고… 

늦잠 자보는 작은 바람부터 꿈에나 이룰 수 있을까 했던 집 장만하는 일까지 막상 이루고 나면 그 만족이 그렇게 오래가지 않을 것 같은 슬픈 예감이 있다.

이룬다면 후회하지 않을, 영원한 만족을 줄 수 있는 그 일이 나에겐 뭘까, 그런 일에 남은 일생을 투자하고 싶다.

“네가 이 세대에서 부한 자들을 명하여 마음을 높이지 말고 정함이 없는 재물에 소망을 두지 말고 오직 우리에게 모든 것을 후히 주사 누리게 하시는 하나님께 두며(딤전 6:17)”


 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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